21세기 신체와 사물의 연결 감각 – 일상에서, 전시공간에서 (2017)

  • 서론

연구의 배경과 필요성

이 연구는 나의 미술 작업과 동시대 사회 사이의 관계성을 발견하고자 하는 의지에서 비롯되었다. 나의 작업은 ‘신체와 사물 간의 접촉’을 바탕으로 하는데, 이를 인지/사회과학 관점에서 바라본 후, 이론적 당위성을 만들고 싶었다. 많은 미술가가 사물을 제작하고 전시한다. 이것은 미술의 기본적 행위이자 포맷이다. 그런데 미술가나 관람객의 신체와 제작된 사물 간의 직접 접촉에 대해서는 많은 경우 피하려고 한다. 작품이 훼손되거나 작품의 아우라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우려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상호성에 대한 의문을 품었고, 밝히고 싶었다.

이 글에서는 철학, 과학, 심리학 등의 이론들을 바탕으로 인간이 자신과 주변 사물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밝히고, 그 둘의 동시대적 관계를 조망하고자 한다. 그리고, 포스트휴머니즘 담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신체와 사물의 정체성은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 상호작용을 통해 유기적으로 변화하는 가능성을 지녔다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먼저, 일상과 전시공간에서 우리가 신체와 사물을 어떻게 인지하는지를 바라보고자 한다. 더 나아가, 신체와 사물의 혼종 감각을 인지과학 이론을 통해 살피고자 한다. 이를 바탕으로 신체감각은 주관적으로 인지될 수 있으며, 마음이 몸과 환경의 영역까지 확장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를 것이다. 또한, 현대사회에 새롭게 출현한 사물과 변화하는 신체 인식에 대해 분석할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신체와 사물 간 관계를 바라보는 인식이 주체-대상의 위계를 벗어나고 있다는 동시대적 새로운 의미에 주목하게 될 것이다. 이 연구를 통해, 나의 미술 작업 방향을 돌아보고, 새로운 가능성을 설정해 보기로 한다.

  • 본론

1. 신체와 사물 인식

이 단락에서는 신체와 사물이 오늘날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 말해보고자 한다. 발전된 해부학 지식을 통해 우리는 실제로 한 번도 보지 못한 자기 몸 안의 모습을 알게 되었다. 나아가 병원에서 전산화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등의 영상 장비로 손쉽게 신체 내부를 촬영할 수 있게 되었다. 최근 국가연구기관에서 진행 중인 Visible Korean 프로젝트는, 인체를 0.2mm로 연속 절단하여 고해상도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단면 사진을 디지털 자료화하는 프로젝트이다. 인체의 몸무게는 컴퓨터 안의 용량으로 변하며 이미지 데이터는 공유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흐름은 과거 세계 역사에서 종교나 신화들이 신비주의로 덧씌운 인체 관념을 쉽게 소멸시킨다. 아마도 지금은 인류 역사상 인간의 물질성이 가장 강조되는 시기가 아닌가 싶다.

한편, 사물이란 물질세계에 있는 모든 구체적이며 개별적인 존재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실존주의 관점에서 인간의 ‘실존은 본질에 앞서’지만, 사물에서는 ‘본질이 실존에 앞선다.’ 일상의 사물들은 처음부터 특정한 목적으로 만들어져, 신체의 가까이에서 도구로 사용된다.


2. 전통적 ‘신체-사물’ 인식의 위계 – 일상에서, 전시장에서

역사적으로 신체와 사물 간에는 위계와 종속이 지속하고 있다. 인간이 고대에 사물을 어떻게 인식했는지는 고대 무덤의 껴묻거리 풍습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사물이 물건으로서 소유자의 신분, 지위, 역할 등 사회적 정체성을 상징했다. 이러한 인식은 동시대 자본주의 사회에 이르러서도 유효하다. 돌 같은 천연자원을 제외한, 만들어진 사물은 항상 소유주가 있다. 소유주가 없다면 그것은 공공재 이거나, 버려진 쓰레기일 것이다. 인간은 소유와 기능의 대상으로 사물을 바라본다. 

반면, 전시공간에서 관람자는 전시된 사물을 관찰 대상으로 삼는다. 뒤샹 이후, 실용 목적으로 만들어졌던 레디메이드 물건이 전시장에 놓이면서, 미술에 있어서 사물의 기능은 전환되었다. 단지 레디메이드 물건이 아니더라도, 전시작품의 기능은 ‘관람성’, 즉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작품을 구매하여 소유할 수도 있지만, 소유 이전의 첫 번째 목적은 전시라고 본다. 

또한, 서론에서 언급했듯이 대부분 작품은 전시장에 놓이면서부터 만져질 수 없다. 때로는 안전을 위한 방어막을 설치해 적정거리 이상 다가갈 수도 없다. 전시된 사물은 응시의 대상이 됨으로써 일단 가치를 보장받으며 작품이 좋을 경우, 수많은 사람의 찬사와 사랑을 받는다. 이것은 사물이 마치 TV 스타와 같은 지위를 누리는 것으로 보인다.1


3. 신체-사물 혼종 감각에 관한 인지과학 분야의 연구와 이론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학의 두뇌인지 센터 소장이자 교수인 라마찬드란 박사가 고안한 실험에 따르면, 간단한 몇 가지 지시사항을 따르고 나면 우리의 코가 60cm 정도로 늘어나거나 책상이 자신의 일부가 된 것처럼, 혹은 가짜(고무) 손에 감각이 있는 것처럼 느낄 것이라고 한다. 이들 실험의 요점은 우리 자신 신체의 경계나 신체적 현존에 대한 우리의 감각이 고정된 것이 아님을 보이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실험에서 우리는 생물학적 두뇌가 뒷받침하는 신체 이미지가 매우 유연하며, 환경에서 오는 조절된 신호에 매우 빠르게 반응함을 발견한다. 이것이 타당한 이유는 우리의 신체가 평생 변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2

우리의 두뇌가 지각된 상관관계에 의존하여 우리의 신체적 경계나 위치에 대한 모형(감각)을 지속해서 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라마찬드란의 원리라고 부르며, 라마찬드란과 블레이크스리(공동 연구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러하다. 

당신은 평생 당신의 ‘자아’가 최소한 당신이 죽기 전까지는 안정적이고 영속적인 하나의 신체에 정박해 있다고 가정해왔을 것이다. …… 그런데 이러한 [결과들은] 그것과 정반대의 것을 말해준다. 신체상 겉으로는 영속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간단한 속임수에 의해 크게 뒤바뀔 수 있는, 전적으로 일시적인 내적 구성물에 불과하다.3

위 실험의 핵심은 우리의 감각 기관이 주어진 환경에 따라 신체를 유동적으로 인지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즉, 신체의 감각은 넓게 확장되거나 다른 사물로 옮겨갈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공감이 가는 또 하나의 가설이 있다. 언어학자인 조지 레이코프와 마크 존슨 등에 의해 제안된 ‘체화된 마음(embodied mind)’ 또는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인데, 이는 인간의 특정 (몸의) 감각 및 운동 체계가 우리의 사고와 정서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것이다.4 체화된 인지는 인지 작용이 단지 고립된 뇌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닌, 개인이 사회적 상호 작용과 물리적 환경의 자연물과 인공물의 상호 작용을 한다는 의견이다. 뇌가 인간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인지 자원이 아니라는 놀랍도록 과격한 가설로서, 실제 입증되기 위해 보다 많은 실험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다.5 이것은 앞으로의 연구들을 통해 인지과학자들이 증명해나가겠지만, 내가 주목하는 중요한 맥락은 뇌가 신체적 활동과 주변의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이러한 생각은 몸을 주 표현 재료로 삼는 안무가와 무용수들이 움직임 실천을 통해 자연스럽게 느끼는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최근에 웨인 맥그리거의 현대 무용 공연 ‘아토모스’를 관람했는데, 관객과의 대화에서 그가 ‘적어도 우리 안무가와 무용수들은 몸으로 사유한다고 생각된다’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지난번 피나 바우쉬 공연을 보러 갔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무대에 놓인 특정 ‘사물’이 움직임에 거슬리진 않는지 묻는 관객에게 한 무용수가 이렇게 답했다. ‘바닥에 깔린 흙이나 양동이 등의 사물을 이용해 춤을 출 때, 처음엔 어렵지만 점점 자연스럽게 융화되어 나중엔 사물이 신체의 일부인 것처럼 느껴지며 익숙해진다.’ 

책과 블로그, 그리고 공연에서 내가 목격한 사람들은 뇌의 인지가 몸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에 머무르지 않고, 몸과 환경과의 관계에서 오는 혼종 감각을 인정하고 찾아나가는 중이었다.


4. 현대사회 사물과 신체의 변화

새로운 상품 디자인은 인간의 행동을 변화시킨다. 도구의 특성에 따라 인간의 행동이 변화하는 점은 근래의 일만은 아니며, 인간이 도구를 처음 사용했을 때부터 그랬을 것이다(예를 들어 돌도끼를 발명하면 팔을 위로 크게 들어 아래로 내려치는 행위가 생겨난다). 휴대폰은 어느 때보다도 인간의 촉각을 활성화하고 있고, 기존의 시각 중심 사회에서 시각+촉각의 사회로 넘어가도록 끌고 가고있다.6 엄지손가락을 이렇게 자주 빨리 움직이는 세대는 인류역사상 처음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사물은 인간관계의 가운데에서 매개 역할도 하는데, 과거에는 편지가 그러했고, 현재는 PC, 휴대폰 등 네트워크 접속이 가능한 디지털 기기가 그러하다. 이 납작한 사물을 통해 우리는 원거리에 있는 상대와 문자로 대화하고 목소리를 듣고, 얼굴을 마주 본다. 아직까진 실생활에 널리 보급되진 않았지만, ‘인공지능 사물’도 출현하고 있다. 로봇 기술이 날이 갈수록 정교화되면서 인간이 할 수 없는 영역의 일들을 해내기 시작하고 있다. 

이렇게 현대사회의 사물은 실제로 인간의 움직임을 바꾸고, 인간과 인간의 사이에 존재해 그들을 연결하고, 인간의 대표적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지능’을 획득하며 인간과 닮아가는 변화를 누리고 있다. 단지 닮을 뿐만 아니라 사물의 역할이 대상에서 점점 주체로 옮겨가는 듯한, 말하자면 사물의 신분이 상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다면, 인간 신체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까. 본론 (1)에서 언급한 Visible Korean 프로젝트는 시신을 연속 절단함으로써 그 적나라한 물질성이 느껴지게 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 절단면을 사진 찍어 컴퓨터에 자료화 함으로서 비물질으로의 전환 가능성도 보인다. 

도시의 곳곳에서 우리는 감시카메라를 발견한다. 이제는 화장실과 주거공간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곳에서 실시간으로 서로를 감시하고, 감시당한다. 인간의 몸은 사진과 영상으로 재현되며, SNS를 통해 전시되고, 공유된다. SNS에서 자신을 계속해서 재현하는 행위로 인해 자의든 타의든 간에, 자신의 신체 재현 이미지는 볼거리의 기능을 가지게 된다. 그 이미지를 보는 사람들(팔로워들)에 의해 대상화되며, 찬사 혹은 야유를 받는다. 이러한 상황은 인간이 전시공간에서 사물의 기능인 ‘관람성’을 가지게 되면서 사물과 닮아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만든다. 

현대 사물의 변화 양상에서 언급했듯이, 인간의 신체 감각은 디지털 사물로 인해 변화하고 있다. 인간의 소통방식에 있어서, 문자가 없었던 과거에는 청각이 감각의 주를 이뤘다. 문자가 생겨난 이후로는 시각이, 그리고 현대 디지털 문화에서는 시각과 촉각이 주를 이루는 것이다.7


5. 신체와 사물의 접합점

인간은 자신이 소유한 사물의 성질에서 자신의 사회적 정체성을 발견하기도 하며, 반대로 사물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 과정과 위에서 언급한 동시대의 여러 양태를 통해 주체와 대상의 구분은 모호해지고, 인간과 사물은 서로 닮아간다. 인간의 외형을 모사한 로봇 같은 직접적 경우가 아니더라도, 사물은 그 본질적인 면에서 인간을 닮아간다. 또한, 인간과 사물은 서로의 성질에 맞추어 점점 정교하게 접합된다. 애플리케이션과 웹사이트의 사용자 친화적 인터페이스는 인간의 시각적 인지 과정에 맞추어 설계된다. 기능을 가진 사물을 액세서리처럼 착용하는 웨어러블 기기가 판매되고 있으며, 기능을 최대한 편안하게 사용하기 위한 인체공학적 사물 디자인이 인기를 끈다. 더욱 정교한 인체공학 지식을 위해 인체 해부 프로젝트가 도움을 주기도 한다.8

  • 결론

1. 신체-사물 인식의 재정립

라마찬드란의 원리, ’체화된 인지’와 더불어 신체와 사물을 바라보는 인식의 동시대적 변화는 신체 감각이 유동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각인시킨다. 사물을 통해 신체 감각을 적극적으로 확장하는 일도 가능하다.

최근 뇌과학의 발달로 뇌의 중요성이 주목받고, 뇌 이외의 다른 신체기관은 기능으로서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 트랜스휴머니스트 협회가 주장하는 급진적 인간 변형의 예9만 보아도 그렇다. 하지만 고대 이집트에서 미라를 만들 때, 뇌는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져 버려졌던 것처럼, 인지와 신체 감각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며 그것의 가치 또한 상호 변화하는 개념이다.


2. 전시공간에서 신체-사물 위계 관계를 재정립하는 이미지의 가능성

이제 전시공간에서 미술가의 역할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나는 관람자가 직접 참여하는 미술 작업에 대한 의지가 뚜렷하다. 관람자와 작품의 대등한 관계를 만들고, 관찰자가 동시에 관찰대상이 되는 상황을 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물론관객 참여 퍼포먼스 방식은 60~70년대 플럭서스부터 많은 예술가가 행해왔다. 나의 작업은 거기서 더 나아가, 발전한 인지과학과 미디어 친화적 환경, 물질과 비-물질의 혼재, 또는 가상세계에서의 수많은 상호작용 등의 현상을 작업 과정 안에 끌어들이고, 이 이론들을 미술적 방식으로 고민하고 작업해나가고자 한다. 

또한, 나는 아직 가설로서 존재하는 ‘체화된 인지’의 흥미로운 가능성에 응원의 한 표를 던지며, 나 또한 환경과 합치된 신체 이미지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발전시켜 나가고자 한다. 나는 관람객이 실제 접촉 가능한 작품을 만들고 함께 착용해보는 행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전시공간에서 관객이 작품과 접촉된 상태로 다른 관객에 의해 대상화되는 일이 인간 ‘주체’의 관점에서, ‘휴머니즘’ 관점에서 벗어난다고 말하기가 이제는 어려워졌다. ‘몸’을 인지하는 우리의 태도와, ’휴먼’자체의 개념이 달라지고 있는 이유에서다. 탈-인간중심주의를 통해 인간은 여러모로 다르게 읽히고 중첩되고 확장된 영역으로 나아가게 된다.

1. 히토 슈타이얼은 그의 저서 스크린의 추방자들 54페이지에서 1977년 데이비드 보위의 <영웅들(Heros)> 뮤직비디오를 언급하며, 더는 주체가 아닌 객체로서의 스타의 이미지를 상품에 비추어 말한다. 나는 그걸 역으로 생각해보았다.

2. 앤디 클락이 내추럴-본 사이보그(2015, 한국어판) 95-98페이지에서 정리한 글을 발췌, 요약했다. 실험 내용의 원문은 V. S. Ramachandran and S. Blakeslee, Phantoms in the Brain: Probing the Mysteries of the Human Mind (1998), 58페이지.

3. 앤디 클락, 내추럴-본 사이보그(2015, 한국어판) 99페이지. 원문 V. S. Ramachandran and S. Blakeslee (1998) 62페이지.

4. J. I. Davis와 A. B. Markman, 인지과학의 주제들(TiCS), (2012. 11), 이정모 블로그에서 한글 발췌. http://blog.naver.com/metapsy

5. Andrew D. Wilson, Sabrina Golonka, Embodied cognition is not what you think it is, https://doi.org/10.3389/fpsyg.2013.00058

6. 이수안, 디지털 문화와 포스트휴먼 징후로서 ‘호모 센수스(homo sensus)’의 출현 (2007)

7. 이수안, 동일 논문에서 발췌, 요약.

8. Digital Korean 프로젝트, 한국인 남녀 시신 약 100여 명과 노령 척추 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하여 의료 영상을 수집하고 이를 기초로 하여 골격(뼈대)을 중심으로 3차원으로 재구성한 인체 모델과 뼈대 치수 및 뼈대 물성 등의 인체 데이터를 생산하여 각종 연구 및 산업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http://dk.kisti.re.kr

9. 트랜스휴머니스트 선언문, 번역 http://blog.daum.net/shrheey/22